오랜만의 글쓰기

오랜만에 글을 써보려고 하니, 하이얀 모니터화면이 부담스럽다. 가끔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어디에 써야 할 지 망설이다가 주제를 흘려보내버리곤 했다. 누구나 글은 읽을 수 있지만, 글을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심적 여유가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글을 쓰는 것도 같다. 누구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내 마음을 오롯이 꺼내놓는 일, 섬세하게 전달하는 일 역시 심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혹은 아주 절박한 심정에서 조금의 여유를 구하기 위하여 쓰기도 한다. 일상의 잔상을 가볍게 툭툭 써내려가고 싶은 마음은 늘 있으나, 닿지않는 글을 쓴다는 것은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무언가 병적으로 남기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자체에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지나간 과거는 놓아주고 그날 하루의 순간 순간을 충실히 보내는 것,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희망을 기대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최근 둘째 아이를 낳을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사실 아주 이전부터 고민해왔던 문제다. 아직껏 해결하지 못한 찝찝한 과제랄까? 가끔 새로운 가족에 대한 굉장한 열망이 피어오를 때가 있다. 이제서야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아기를 낳는 것이 부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문을 열었으면 닫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처럼, 짝수에 안정감을 느끼는 것처럼, 여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성스러운 의식인것 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어제 네이버카페를 둘러보다가 마음이 동한 글이 있었다. 딩크로서 충분히 즐겁고 훌륭하게 살았는데, 나이가 50넘어서 되돌아보니 자식이 있는 친구들과 본인을 비교하며, 나는 누군가를 조건없이 사랑하고 책임져볼 기회가 있었던가라는 공허한 심정을 토로한 글이었다. 역시 나는 아이가 하나 있으니까, 잘했어라고 속으로 생각하던 찰나, 몇 백개의 댓글 안에서 기억에 남는 하나가 있었다. “자식 유무와는 관계없이 내 인생은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자식에게 기대든, 자식이 없는 공허함이든 모두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 본질은 나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나가듯 흘려본 이 댓글에 뜻밖의 안도감이 들었다. 내 주변 요소가 아닌, 내 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모든 것이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는 깨달음. 어쩌면 모든 인생사는 여기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스쳐지나며, 어떻게 보면 인생은 참 단순하구나하는 안도감이었다.

누구와 함께이거나 함께이지 않거나 상관없이 결국엔 내가 나 스스로를 돌봐야할 뿐 아니라, 스스로의 결정까지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 누군가에게 내 인생을 의지하려 일방적으로 기대거나, 혹은 그것을 강요하거나, 의지할 누군가가 없다고 침울해해도 모두 결론은 같다. 결국 인생은 혼자라는 사실. 든든한 남편(혹은 아내)과 사랑스러운 아이가 곁에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매우 감사하고 행복할 일이지만, 절대로 내가 그들이, 그들이 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괴롭겠지만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인생의 몫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두려워 하지말고 당당히 직면하는 자세를 갖추어 나가는 쪽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삶과 나의 글은 그러한 쪽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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